[션원/셔누원호] 그런 이상한 뭐 그런 아무튼 그런 마음
[션원/셔누원호] 그런 이상한 뭐 그런 아무튼 그런 마음
by. 므츠
데뷔가 코앞이었다. 치열하다 못해 어쩌면 약간의 생채기를 남긴 서바이벌의 시간을 보내고 났더니 난생 처음 '팬'이라는 존재도 생기고 살면서 겪은 것 중 가장 많은 카메라와 조명이 들이닥치는 다소 얼떨떨한 시간이 몰아쳤다. 정식 데뷔가 코앞이니만큼 다른 생각을 하고 싶어도 그럴 겨를도 없이 새로운 것들을 익숙하게 해내기 위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잘해내는 멤버들을 보면서 모든 게 이제 순조롭다고만 생각했건만, 모든 일은 생각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원호!!! 너 한 박자 느리다고 지금 몇 번 말해!? 다시 백댄서 하고 싶어??!"
이틀? 삼일? 당장 다음주가 데뷔 첫 무대인데 팀의 리더를 맡고 있는 원호는 계속 실수투성이였다. 다들 처음해보는 자켓 촬영이든 뮤비 촬영이든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잘 해내던 게 원호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자신있을 안무 연습 중에 자꾸만 틀려서 지적 받는 것에 못내 신경이 쓰였다.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 아닌지 오늘따라 같은 동작을 서너번 틀리는 바람에 꾸지람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뒤에 서서 잠자코 보고 있던 셔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자신들이 혼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땀 범벅인 창균이 주헌이나, 초조하기라도 한지 자꾸만 어지럽게 손가락을 엉켰다 풀었다 하고 있는 민혁이까지 보고 있으려니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육두문자가 섞인 꾸지람을 들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원호가 흘리는 땀방울이 연습실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셔누가 손을 들었다. 주제 넘는다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았다.
"말씀 중 죄송한데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만 하면 안 될까요."
"뭐?"
"아무래도 저희끼리 이야기 해서 풀어야할 게 있는 것 같아서요."
단정한 셔누의 말에 뒤에 서있던 멤버들도 그동안 여간 눈치가 보였던 게 아니었던지 고개를 끄덕이며 셔누의 의견에 동의하는 내색을 하자 마지못한 안무단장은 내일은 대신 더 빡세게 해야한다며 으름장을 놓고 풀어준다.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건 원호 뿐인지 바닥을 보고 있는 고개가 쉽게 들리질 않는다.
* * *
"......"
"......"
기세 좋게 연습까지 꺾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거실에 쪼르르 둘러앉았지만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는 딱 한 명에게 있었으니까. 누구 하나 잘못 입을 열었다간 원호를 탓하는 것처럼 몰아갈까봐 쉽게 입을 열수가 없었다. 그저 당사자인 원호가 먼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호는 뭔가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한데 그것에 대해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묵언수행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들 고픈 배도 참고 서서히 몰려오는 잠도 참으면서 삼십분, 한시간 세월아 네월아 하며 원호만 기다리고 있는데 더 이상 안 되겠던지 다시 셔누가 입을 열었다.
"호석아."
"어어.."
"어디 아프거나 그런 거야?"
"아... 아냐. 그런건."
"그렇게 말 하기 어려운 거야? 그럼 그냥 이야기 하지 말까?"
"......"
평소보다 더 다정함을 무장한 셔누의 말투에 원호를 탓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말하기 정말 곤란한 것이라면 더 이상 묻지 않고 싶은 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던지 작게 그래, 맞아, 처럼 동의를 표하는데도 원호는 다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알잖아. 우리 이 상태면 당장-"
"아냐, 말 할게."
"... 괜찮겠어?"
부드러운 어투로 다시 원호를 달래는 셔누의 말에 원호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느꼈던지 고개를 들고 비장함까지 엿보이는 눈빛으로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 보고 있는 사람까지 긴장될 정도로 심각한 눈빛으로 멤버들 한 명 한 명 쳐다보더니 천장을 보고 한숨을 길게 내쉬고서 한다는 소리가,
"사실 나 게이야."
"......"
"......"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라 다들 듣고도 뭐라 반응할지 몰라 눈만 꿈뻑이고 있는데 언제나 현실 적응력 빠른 민혁이 뭐, 하고 입을 떼더니 "그럴 수도 있지." 란다.
"맞아. 난 형의 그런 성향도 존중해."
"어차피 데뷔하면 남자든 여자든 연애하는 건 다 숨겨야 할 걸?"
"할 시간이나 있으면 다행이게."
"...그게 다야? 너네 아무렇지도 않아?"
"막 듣고는 좀 당황하긴 했는데 그다지 별 생각 없는데."
"...내가 막 더럽다거나 그러진 않아..?"
"그러기에 형은 너무 오래 씻지."
잔뜩 주눅이 들어서 심각하게 자조적인 질문을 하는 것에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것처럼 동문서답을 뱉는 창균이의 대답까지 듣고 나서야 원호는 그동안 긴장했던 게 조금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형 덕분에 오늘 좀 쉬는 시간도 있네, 이제 배고픈데 밥먹으면서 얘기를 하면 안 되냐 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로 쉽게 돌아가는 것에 원호는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목소리를 키우면서 묻지도 않은 말들을 떠들기 시작한다.
"아니 근데 나 진짜 그런 성향이긴 한데 연애 안 한지도 오래 됐구 너네한테 그런 이상한 뭐 그런 아무튼 그런 마음 같은 거 가진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되거든. 근데 내가 이런 말하면 다들 내가 좀 그렇게 볼까봐 오해하고 그래서-"
"형."
"어, 어어."
"아무도 그런 생각, 그런 오해 안 해."
"......"
"그러니까 그런 변명도 안 해도 돼. 그런 걱정도 안 해도 돼."
"......"
간결한 말이지만 진심이 담긴 말에 원호는 기어이 그렁그렁 눈물을 달았고 역시나 상황을 마무리 하는 건 어깨를 툭 치면서 이제 됐으면 밥이나 먹으러 가자는 셔누의 말이었다.
그것이 아마도 2년 전쯤의 일일까. 원호의 눈물겨운 커밍아웃 당시에 누군가가 했던 말처럼 '연애 할 시간이나 있으면 다행이게' 라는 말은 현실이 되어 연애는커녕 잠을 제대로 잘 시간도 없었다. 남자를 좋아하든 여자를 좋아하든 알게 뭔가. 연애 할 시간에 잠 한숨 더 자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인 것을. 원호가 커밍아웃 당시에 말하던 '그런 이상한 뭐 그런 아무튼 그런 마음'이 대체 어떤 마음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언뜻 보고 자세히 봐도 원호와 멤버들은 정말 그런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0%인 친형제들로 보일 뿐이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중간에 낑긴 엉망인 나이들 덕분인지 따지고 보면 나이 터울이 얼마 나지 않은 덕분인지 그냥 타고난 성격들이 비글들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 원호~ 오늘도 작업실 가?"
"형이라 했지."
"형이라 했는데?"
"아 이게 진짜."
팀내 서열을 굳이 따지자면 절대적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을 이민혁은 요즘 부쩍 원호와 맞먹는 중이었다. 형 대접을 해주기는 하나 따지고 보면 빠른 93년생인 원호와 동갑 아니냐며 장난식으로 맞먹고 있었고 그때마다 원호는 어지간한 멤버들의 장난에 웃으면서 받아주다가도 발끈하면서 민혁이 노리는 반응을 곧이곧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민혁아, 그만 해라."
"넹~"
"와, 저거 봐. 현우 니 말만 듣고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알았어알았어, 원호 말도 들을게. 끝까지 깐족거리면서 원호 머리를 덥석 부벼주고 저만치로 달려가 주헌이에게 헤드락을 걸어버리는 민혁의 뒷모습을 보면서 원호는 꽤나 진심으로 분한 것처럼 굴었다. 모두가 말하는, 본인도 잘 아는 하얗고 예쁜 얼굴이 흔치 않게 미간을 찌푸리며 입이 댓발로 나와서는 셔누에게 연신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에 셔누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다독이면서 운동이나 하러 가자고 하는 것 뿐. 그럼 우리의 하얗고 착한 원호는 언제 이민혁 때문에 짜증이 났었냐는 것처럼 그럴까? 그럼 운동하고 작업실 가야겠다 라면서 헝헝 웃고 마는 것에 요즘 셔누는 마음이 어지러웠다.
맹세컨데 셔누는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과 같은 성별을 가진 사람을 연애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연예계 바닥에 이래저래 오래 몸 담으면 그런 사람들도 많이 본다고 했지만 워낙 남 일에 관심이 없는 성격 탓인지 아니면 정말 제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인지 것도 아니면 타인에게 있어서 본인이 썩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생각되어 다들 숨겼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셔누 본인이 아는 한 제 주변에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도 없었기에 솔직하게 말하면 원호의 커밍아웃이 나름 쇼킹하게 다가오긴 했었다. 물론 셔누가 당황한 티를 내기도 전에 어떤 심각한 문제도 쉽게 풀어내버리는 멤버들 덕분에 상황종료되었긴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그 뒤로 셔누는 원호를 꽤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셔누가 원호를 만났을 때가 어땠던가. 지금보다 더 작고 날씬했던, 하지만 그때도 하얗고 예뻤던 저와 너무나 다른 인물이 탐탐 유리벽 너머에서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날 정도였다. 앞서 말했듯 대형 소속사의 연습생 신분이든, 탑스타 백댄서든 그 바닥에서 나름 오래 굴렀고 이런 저런 온갖 화려한 사람도 많이 봤는데 막상 생각해보면 원호같은 부류는 많이 본 적이 없었다. 다들 기쎄고 성격강하고 그런 면들을 고스란히 외적으로도 드러내는 부류의 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탓인지 같이 데뷔를 하게될 지 어떨지도 모르는 초면인 상대에게 그렇게나 말갛게 웃어주는 순진하고 예쁜 제 또래 남자애는 흔치 않았다고 해야하나.
- 까지 썼는데 언젠간 뒤에 더 잇겠지... 너무 바쁘다